태국 이싼 탁신 지지는 2000년대 이후 태국 정치를 이해할 때 가장 중요한 현상 가운데 하나입니다. 태국 북동부 이싼(이산, Isan)은 오랫동안 탁신 친나왓과 그 계열 정당의 핵심 지지기반으로 알려져 왔습니다.
하지만 이를 단순히 “이싼은 가난한 농촌이라 탁신의 포퓰리즘에 넘어갔다.”
라고 설명하면 실제 태국 정치의 중요한 부분을 놓치게 됩니다.
이싼에서 탁신과 친탁신 정당이 오랫동안 강했던 이유에는
지역격차, 30바트 의료제도, 마을기금과 농촌정책, 정치적 대표성, 2006년 이후 반복된 정치적 충돌, 레드셔츠 운동 등이 함께 작용했습니다.
그리고 더 중요한 것은 탁신 이후입니다.
2023년 총선에서는 이싼에서도 Move Forward가 크게 약진하면서 이 지역의 정치가 더 이상 친탁신 세력 하나로만 설명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확인됐습니다. 이싼 정치에 대한 최근 연구도 과거 강한 프어타이 기반이 유지되면서 동시에 새로운 정당과 세대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다고 평가합니다. (ISEAS Publishing)
그렇다면 태국 이싼은 왜 오랫동안 탁신을 지지했을까요?

태국 이싼은 어떤 지역일까?
이싼은 태국 북동부 지역을 의미합니다.
나콘랏차시마, 콘깬, 우돈타니, 우본랏차타니, 로이엣, 시사껫, 농카이 등 20개 주가 포함됩니다.
문화적으로는 라오계 전통의 영향이 강하고, 이싼어 역시 라오어와 매우 가까운 언어적 특징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태국의 정치와 경제, 행정기능은 오랫동안 방콕과 중부지역에 집중돼 왔습니다.
이 때문에 이싼은 태국에서 인구가 매우 많은 지역임에도 불구하고 오랫동안 “방콕과 중앙정부에서 멀리 떨어진 주변부”라는 인식을 경험해왔습니다.
태국 이싼 탁신 지지를 이해하려면 가장 먼저 지역격차를 봐야 합니다.
세계은행 자료에서도 태국 북동부 농촌지역은 방콕과 중부지역에 비해 빈곤과 경제적 취약성이 상대적으로 높은 지역으로 나타납니다.
2021년 기준 북동부 농촌의 빈곤율은 전국 평균보다 약 두 배 높은 수준이었습니다. (World Bank)
문제는 단순히 소득이 낮았다는 것만이 아닙니다.
좋은 대학, 고임금 일자리, 정부기관, 대기업, 전문 의료시설, 산업투자가 방콕과 중부에 집중되면서 이싼 주민들은 더 나은 일자리를 찾아 방콕으로 이동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래서 이싼에서는 오랫동안 “국가의 경제성장에서 우리는 뒤에 있다.”는 감정이 만들어질 수 있었습니다.
이싼은 단순히 ‘가난한 농촌’이 아니다
이싼을 설명할 때 흔히 생기는 오해입니다.
이싼 주민 전체가 농민도 아니고 모두 가난한 것도 아닙니다.
콘깬과 나콘랏차시마 같은 대도시도 존재하고 중산층과 전문직, 사업가도 많습니다.
중요한 것은 지역 전체의 평균적인 경제기회가 방콕보다 제한되어 있었다는 점입니다.
즉, “개인이 가난해서 탁신을 지지했다”기보다 자신의 지역이 오랫동안 국가 발전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됐다는 경험 이 정치적 선택에 영향을 줬다고 보는 편이 더 정확합니다.
탁신 정부에서 가장 상징적인 정책 가운데 하나가 “30바트 의료제도”였습니다.
흔히 30 Baht Scheme 이라고 불렸으며 이후 태국의 Universal Coverage Scheme, 즉 보편적 건강보장체계로 발전했습니다.
태국의 보편적 의료보장 아이디어 자체는 탁신 이전부터 공중보건 전문가와 관료들이 준비해왔습니다.
그러나 탁신 정부가 2001~2002년 이를 전국적으로 확대하면서 대부분의 국민이 기본적인 의료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는 구조가 만들어졌습니다.
WHO는 태국의 Universal Coverage Scheme이 2002년 시작됐으며 이후 전국민 의료보장의 핵심 제도로 자리 잡았다고 평가합니다. (Iris)
왜 30바트 의료제도가 이싼에서 강하게 기억됐을까?
농촌과 저소득 가구에서 질병은 단순히 건강문제가 아닙니다.
병원비 때문에 빚을 내야 하거나, 치료를 포기하거나, 가계 전체가 경제적으로 흔들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의료비 부담이 크게 줄어드는 정책은 체감효과가 매우 큽니다.
탁신 정부 이전에도 태국에는 여러 공공의료제도가 존재했지만, Universal Coverage Scheme은 기존 사회보험이나 공무원 의료제도의 적용을 받지 못하던 국민에게 광범위한 의료보장을 제공했습니다.
따라서 많은 이싼 주민에게 탁신 정부는 “선거에서 약속만 한 정부”가 아니라 “병원에 갈 수 있게 만든 정부”로 기억될 수 있었습니다.
이 차이는 매우 중요합니다.
탁신 정부의 또 다른 대표정책이 1백만 바트 마을기금(Village Fund)이었습니다.
각 마을 단위로 기금을 조성해 주민들이 소규모 사업이나 생활자금을 빌릴 수 있도록 하는 정책이었습니다.
이 밖에도 농민 부채 유예, 지역상품 육성, 농촌 금융 접근성 확대 같은 정책이 함께 추진됐습니다.
이런 정책들은 태국 경제 전체의 생산성을 단숨에 높이는 산업개혁과는 성격이 다릅니다.
하지만 이싼 주민 입장에서는 정책의 효과를 자신의 마을과 생활에서 직접 볼 수 있었다는 점이 중요했습니다.
‘포퓰리즘’이라고 부르면 설명이 끝나는 걸까?
탁신의 농촌정책은 흔히 포퓰리즘이라고 불립니다.
이 표현 자체가 틀린 것은 아닙니다.
탁신은 농촌과 저소득층의 지지를 끌어낼 수 있는 대중적 정책을 적극적으로 사용했습니다.
하지만 “복지를 주고 표를 샀다.” 라고 설명하면 부족합니다.
정치에서 유권자는 자신에게 실제 도움을 준 정책을 평가해 투표합니다.
도시 중산층이 세금, 주택, 교통, 교육정책을 보고 투표하는 것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싼 주민이 의료와 농촌금융 정책을 평가해 탁신을 지지한 것을 정치적으로 무지해서 현금성 혜택에 넘어간 것처럼 보는 것은 지나친 단순화입니다.
정책만큼 중요한 것이 정치적 대표성이었습니다.
탁신 이전에도 태국 정치인들은 당연히 농촌표를 필요로 했습니다.
하지만 탁신의 Thai Rak Thai는 농촌과 북동부를 전국 선거전략의 중심에 놓았습니다.
이전에는 방콕 정치가 결정하고 지방이 따라간다는 인식이 강했다면, 탁신 시대에는 북부와 이싼의 표가 실제로 중앙정부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경험이 생겼습니다.
학술연구에서도 탁신 시대의 정치적 변화가 농촌 유권자를 더욱 강하게 정치화하고, 기존 도시 중심의 권력구조에 도전하게 만들었다고 평가합니다. (Cambridge)
이것이 돈보다 오래 남은 이유
경제적 지원은 시간이 지나면 잊힐 수 있습니다.
하지만 “내 표가 정부를 만들었다.”라는 정치적 경험은 훨씬 오래 남을 수 있습니다.
많은 이싼 주민에게 탁신의 등장은 정부가 우리에게 무엇을 줬는가뿐 아니라 “국가가 우리를 정치적으로 중요한 국민으로 인정하는가?”라는 문제와 연결됐습니다.
이 때문에 탁신을 둘러싼 갈등은 단순히 한 정치인을 좋아하느냐 싫어하느냐의 문제가 아니게 됩니다.
2006년 태국 군부는 탁신 정부를 쿠데타로 축출했습니다.
여기서 이싼의 친탁신 정서는 새로운 단계로 들어갑니다.
탁신을 좋아했던 유권자의 입장에서는 선거로 선택한 정부가 비선출 세력에 의해 제거되는 장면이 됐기 때문입니다.
이후 태국에서는 친탁신 정당이 선거에서 승리하고, 정부가 구성되고, 다시 사법·정치적 충돌과 군부 개입이 이어지는 일이 반복됐습니다.
이 과정에서 탁신 지지층 일부는 단순한 정책 지지층에서 선거결과와 민주주의를 지켜야 한다고 생각하는 정치세력으로 변화했습니다.
이 부분도 반드시 구분해야 합니다.
탁신 정부는 권력집중, 이해충돌, 부패 의혹, 언론과 독립기관과의 갈등, 강경한 마약 단속과 인권 문제 등으로 강한 비판을 받았습니다.
따라서, 탁신을 지지했다 = 민주주의자 / 탁신에 반대했다 = 반민주주의자라고 나누는 것은 현실을 지나치게 단순화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탁신에게 문제가 있었기 때문에 선거로 뽑힌 정부를 군부가 제거해도 된다는 문제도 별개입니다.
바로 이 두 문제가 충돌하면서 태국 정치의 극심한 양극화가 만들어졌습니다.
2006년 이후 친탁신 유권자와 선거민주주의 지지층을 중심으로 성장한 대표적인 정치운동이 레드셔츠(Red Shirts)입니다.
공식적으로는 UDD, 즉 United Front for Democracy Against Dictatorship이 핵심 조직이었습니다.
레드셔츠는 친탁신 성격이 강했지만 단순한 탁신 개인 팬클럽은 아니었습니다.
핵심에는 선거에서 다수가 선택한 정부를 왜 비선출 권력이 뒤집느냐 는 문제의식이 존재했습니다.
학술연구에서도 레드셔츠와 탁신계 정치세력의 주요 기반이 북부와 북동부 농촌 유권자였다는 점이 반복해서 확인됩니다. (Cambridge)
왜 이싼이 레드셔츠의 중심이 됐을까?
이싼 주민들에게 레드셔츠 운동은 여러 감정이 겹쳐진 정치운동이었습니다.
지역격차에 대한 불만, 탁신 정책에 대한 긍정적 경험, 자신의 표가 무시됐다는 감정, 방콕 엘리트 중심 정치에 대한 반발이 결합했습니다.
그래서 레드셔츠를 “탁신에게 돈 받은 시위대”정도로 설명하면 태국 정치갈등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결국 탁신이 이싼에서 오랫동안 강한 이유를 한 문장으로 표현하면 “우리 삶을 실제 정책 대상으로 본 정치인이라는 기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완벽한 정치인이어서도 아니고, 이싼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서도 아닙니다.
하지만 많은 유권자 입장에서는 의료, 농촌금융, 부채, 지역경제 같은 문제를 중앙정치의 핵심 의제로 끌어올린 경험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쿠데타 이후 정치갈등이 반복되면서 이 기억은 더욱 정치적인 의미를 갖게 됐습니다.
여기서는 평가를 냉정하게 나눌 필요가 있습니다.
탁신 정부의 정책이 이싼 주민의 생활에 실질적인 영향을 줬다는 것과, 이싼의 구조적인 경제문제를 해결했다는 것은 전혀 다른 말입니다.
이싼에는 여전히
- 농업 의존
- 상대적으로 낮은 생산성
- 교육 격차
- 좋은 일자리 부족
- 방콕으로의 인구 이동
- 낮은 자산 축적
같은 문제가 남아 있습니다.
세계은행 자료에서도 북동부 농촌지역의 빈곤과 경제적 취약성은 태국의 중요한 지역격차 문제로 계속 나타납니다. (World Bank)
따라서, “탁신이 이싼을 구했다.”라고 말하는 것도 과장입니다.
정리하면 다음과 같이 볼 수 있습니다.
성과
생활에 직접 영향을 주는 의료·농촌정책을 확대했습니다.
농촌 유권자의 정치적 중요성을 크게 높였습니다.
정당이 전국적인 정책을 가지고 농촌 유권자에게 접근하는 선거정치를 강화했습니다.
한계
이싼의 낮은 생산성과 산업부족 같은 구조적인 문제를 해결하지는 못했습니다.
탁신 자신도 권력집중과 여러 논란을 안고 있었습니다.
친탁신과 반탁신의 극단적인 정치적 양극화도 발생했습니다.
따라서 탁신의 유산은 성공 또는 실패 하나로 평가하기 어렵습니다.
2023년 총선은 이싼 정치가 변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줬다
현재 시점에서 반드시 추가할 부분입니다.
과거에는 이싼 = 친탁신 = 프어타이라는 공식이 상당히 강했습니다.
하지만 2023년 총선에서는 이러한 구도가 흔들렸습니다.
전국적으로 Move Forward가 제1당이 됐고, 이싼에서도 특히 젊은 유권자와 도시지역을 중심으로 크게 약진했습니다. 이싼 선거에 관한 최근 연구는 프어타이가 여전히 강한 조직과 지지기반을 보유하면서도 Move Forward가 상당한 정당명부표를 확보했고, 이제 이싼 정치에는 여러 경쟁세력이 존재한다고 분석합니다. (ISEAS Publishing)
즉, 탁신에 대한 역사적 지지와 현재 이싼 주민의 정치적 선택을 같은 것으로 보면 안 됩니다.
젊은 이싼 세대는 부모 세대와 다를 수 있다
2001년 탁신이 처음 집권했을 당시 20대였던 유권자는 이제 40~50대가 됐습니다.
현재 20대 유권자에게는 2001년의 30바트 정책보다 군부 정치, 헌법, 표현의 자유, 경제적 미래, 교육, 독점기업, 사회개혁 같은 문제가 더 직접적으로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2023년 총선에서 개혁성향의 Move Forward가 전국적으로 제1당이 된 것은 태국 유권자, 특히 젊은 세대의 정치적 요구가 크게 바뀌고 있음을 보여줬습니다. (IISS)
그래서 앞으로 이싼을 탁신의 영원한 표밭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위험합니다.
이싼 사람들은 왜 다른 보수정당도 지지할까?
이싼에서도 모든 지역이 같은 정치성향을 가진 것은 아닙니다.
지역 정치인, 가문, 지역 사업가, 후보 개인, 정당 조직, 농업정책, 지역개발 공약 등 다양한 요인이 선거에 영향을 줍니다.
특히 이싼 남부에서는 Bhumjaithai 같은 정당도 강한 조직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즉 태국의 지방정치는 단순한 이념투표뿐 아니라 지역 네트워크와 후보 경쟁의 영향도 큽니다.
최근 연구에서 이싼을 더 이상 단일한 ‘레드 지역’으로 볼 수 없다고 평가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ISEAS Publishing)
한국 정치와 비교하면 이해하기 쉽다
한국에서도 특정 지역이 오랫동안 특정 정당을 강하게 지지하는 현상이 있습니다.
이것을 단순히 “그 지역 사람들이 무조건 그 정당을 좋아해서”라고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역사적 경험, 지역개발, 정치적 정체성, 후보, 세대, 정부에 대한 기억 이 오랫동안 누적되어 만들어진 결과입니다.
이싼의 탁신 지지도 비슷합니다.
어떤 지역의 정치성향은 어느 날 갑자기 생기는 것이 아니라 오랜 경험이 쌓여 형성되는 정치적 기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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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 |
핵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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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격차 |
방콕 중심 성장에 대한 소외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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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바트 의료제도 |
의료비 부담을 실질적으로 줄인 경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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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정책 |
마을기금·부채지원 등 체감정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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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대표성 |
농촌표가 정부를 만들 수 있다는 경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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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쿠데타 |
선거결과가 무시됐다는 인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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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셔츠 |
친탁신을 넘어 선거민주주의 요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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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적 기억 |
‘우리 문제를 다룬 정치세력’이라는 이미지 |
결국 핵심은 단순한 경제적 혜택 하나가 아닙니다.
방콕과 이싼의 지역격차를 함께 보면 더 이해하기 쉽다
태국 이싼 탁신 지지를 이해하려면 이싼과 방콕의 경제격차를 함께 봐야 합니다.
사이트의 「태국 빈부격차가 큰 이유」 글과 연결하면 왜 농촌·지방 유권자에게 복지와 지역정책이 큰 정치적 의미를 가졌는지 이해하기 쉽습니다.
또 바로 이전에 정리한 「방콕 농카이 철도」 역시 이싼 지역의 장기적인 경제발전과 연결되는 좋은 내부 링크입니다.
철도와 산업단지, 물류망이 이싼 내부의 좋은 일자리로 이어질 수 있다면 과거와 다른 정치경제 구조가 만들어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태국 이싼 탁신 지지를 “탁신이 돈을 줬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는 것은 가장 쉽습니다.
하지만 가장 부정확한 설명이기도 합니다.
탁신 정부의 정책은 분명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30바트 의료제도, 마을기금, 농민지원과 농촌정책은 실제 생활에서 체감할 수 있는 정책이었습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 20년 가까이 이어진 정치적 지지를 설명하기는 어렵습니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 표가 실제로 정권을 만들 수 있다.”, “중앙정부가 우리 삶의 문제를 중요하게 다룬다.”라는 경험이었습니다.
그리고 2006년 쿠데타와 이후의 정치적 충돌은 이 경험을 더욱 강하게 정치화했습니다.
그래서 탁신은 많은 이싼 유권자에게 단순한 한 명의 정치인을 넘어 지방 유권자의 정치적 힘을 보여준 상징이 됐습니다.
그렇다고 탁신이 이싼의 모든 문제를 해결한 것은 아닙니다.
지역격차, 농업의 낮은 생산성, 교육, 좋은 일자리 부족 같은 구조적 문제는 여전히 남아 있습니다. 세계은행도 북동부 농촌의 상대적으로 높은 빈곤과 취약성을 계속 중요한 문제로 지적하고 있습니다. (World Bank)
또한 오늘날 이싼은 과거와 다릅니다.
2023년 선거에서 새로운 개혁정당이 크게 약진했고, 최근 연구에서도 이싼의 유권자 선택이 과거보다 다양해졌다는 점이 확인됩니다. (ISEAS Publishing)
따라서 “이싼은 탁신의 지역이다.”라고 현재까지 고정해서 바라보는 것도 맞지 않습니다.
가장 정확한 표현은 이렇습니다.
탁신은 오랫동안 주변부로 느껴졌던 이싼 유권자에게 실질적인 정책 혜택과 정치적 대표성을 동시에 체감하게 만든 첫 전국적 정치세력의 상징에 가까웠고, 그 기억이 이후 태국 정치갈등을 거치면서 강한 지지기반으로 남았다.
그리고 지금 이싼의 정치는 그 역사적 기억 위에서 다시 새로운 세대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