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에서 자동차를 유심히 살펴보면 한 가지 특징을 쉽게 발견할 수 있습니다.
도로를 달리는 자동차 상당수가 도요타(Toyota), 이스즈(Isuzu), 혼다(Honda), 미쓰비시(Mitsubishi), 닛산(Nissan) 등 일본 브랜드입니다.
특히 방콕을 벗어나 지방으로 갈수록 도요타 하이럭스(Hilux)와 이스즈 D-Max 같은 픽업트럭을 정말 자주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태국을 처음 방문한 사람이라면 이런 궁금증이 생길 수 있습니다.
“태국은 왜 이렇게 일본차가 많을까?”
단순히 태국 사람들이 일본 자동차를 좋아해서일까요?
물론 일본차에 대한 신뢰도도 영향을 미쳤지만 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일본 자동차 기업들이 1960년대부터 태국에 진출해 공장을 세우고 부품 공급망과 판매망, 정비망까지 구축하면서 태국 자동차 산업 자체가 일본 자동차 기업을 중심으로 성장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렇게 만들어진 구조는 60년 이상 이어졌습니다.
하지만 최근에는 상황이 조금씩 달라지고 있습니다.
BYD를 비롯한 중국 전기차 기업들이 태국에 대규모 투자를 시작하면서 오랫동안 이어졌던 ‘태국 = 일본차 천국’이라는 공식에도 변화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태국은 어떻게 일본 자동차의 나라가 되었고, 앞으로도 일본차 천국으로 남을 수 있을까요?

태국 일본차의 역사는 1960년대부터 시작됐다
태국에 일본 자동차가 본격적으로 자리 잡기 시작한 것은 생각보다 오래전입니다.
도요타는 1957년 방콕에 직영 지점을 개설했고, 1962년에는 Toyota Motor Thailand를 설립했습니다.
1964년부터 태국 현지에서 자동차 조립을 시작했고 이후 Corolla와 Hilux 등으로 생산 차종을 확대했습니다.
특히 중요한 시점은 1969년입니다. (Toyota – 태국 사업 역사)
도요타는 이때 이미 태국 자동차 시장에서 약 22%의 점유율을 차지하며 1위에 올라섰습니다.
즉 최근 몇십 년 사이 갑자기 일본차가 태국 시장을 장악한 것이 아닙니다.
현재 태국 일본차의 높은 시장점유율은 60년 이상 축적된 결과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스즈 역시 일찍 태국 시장에 진출했습니다.
태국은 일본 자동차 기업 입장에서 단순히 자동차를 판매하는 수출시장이 아니라 점차 자동차를 직접 생산하는 국가로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태국 정부가 자동차 산업을 키우기 시작하다
일본 기업의 진출만으로 지금과 같은 자동차 산업이 만들어진 것은 아닙니다.
태국 정부의 산업정책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습니다.
1960년대 태국 정부는 제조업을 육성하기 위해 외국 기업의 투자를 적극적으로 유치했습니다.
자동차 역시 중요한 산업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당시 태국 정부는 현지 자동차 조립산업에 세제 혜택 등을 제공했고 일본 기업들은 이 기회를 적극 활용했습니다.
완성차를 일본에서 만들어 태국으로 가져와 판매하는 것보다 태국에 공장을 세워 직접 조립하고 생산하는 구조가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면서 단순 조립에서 부품 생산과 엔진 생산까지 현지화가 확대됐습니다.
자동차 회사만 들어온 것도 아닙니다.
자동차 한 대에는 수많은 부품이 필요하기 때문에 완성차 업체를 따라 일본계 부품업체들도 태국으로 진출했습니다.
그 결과 태국에는 거대한 자동차 산업 생태계가 형성됐습니다.
일본 기업에게 결정적인 기회가 된 1980~1990년대
태국 자동차 산업이 더욱 빠르게 성장한 시기는 1980년대 이후입니다.
당시 ASEAN 국가들은 자동차와 주요 부품의 역내 생산을 확대하는 정책을 추진했습니다.
일본 자동차 업체들은 태국을 동남아시아의 주요 생산거점으로 선택했습니다.
도요타는 자동차 조립에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1978년 차체 부품 생산회사를 설립했고 1980년대에는 엔진 생산 기반도 확대했습니다.
1990년대 이후에는 대규모 생산공장이 추가됐습니다.
이 시기를 거치면서 태국은 단순히 **’일본 자동차를 많이 사는 나라’**에서 ‘일본 자동차를 대규모로 생산하는 나라’로 변하게 됩니다.
왜 하필 태국이었을까?
일본 자동차 기업 입장에서 동남아시아에는 태국 외에도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 등 여러 시장이 있습니다.
그런데 태국이 자동차 산업의 중심지로 성장한 데에는 몇 가지 조건이 맞아떨어졌습니다.
1. 적극적인 외국인 투자 유치
태국 정부는 제조업 육성을 위해 외국 기업의 투자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습니다.
태국 투자청(BOI)을 중심으로 투자 인센티브를 제공하면서 자동차 및 부품 생산시설을 유치했습니다.
일본 기업 입장에서는 동남아 시장에 진출하면서 동시에 현지 생산기지를 구축할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진 것입니다.
2. 동남아시아 중심이라는 지리적 위치
태국은 동남아시아 대륙부의 중심에 위치합니다.
말레이시아·캄보디아·라오스·미얀마와 연결돼 있고 주변 ASEAN 시장으로 접근하기도 유리합니다.
자동차 생산뿐 아니라 주변 국가로 차량과 부품을 공급하기 좋은 위치입니다.
3. 비교적 탄탄한 제조업 기반
자동차 산업에서 중요한 것은 완성차 공장 하나가 아닙니다.
타이어, 유리, 전장부품, 시트, 플라스틱, 금속가공 등 수많은 부품업체가 필요합니다.
일본 자동차 회사들이 오랫동안 태국에 투자하면서 관련 부품업체까지 함께 들어왔고 이 과정에서 거대한 공급망이 만들어졌습니다.
새로운 자동차 기업이 태국에 공장을 세울 경우 이런 기존 산업 기반을 활용할 수 있다는 장점도 생겼습니다.
결국 자동차 회사가 자동차 회사를 불러들이고, 부품회사가 또 다른 부품회사를 불러들이는 구조가 형성된 것입니다.
태국이 ‘아시아의 디트로이트’라고 불리는 이유
이러한 발전 덕분에 태국은 종종 **’아시아의 디트로이트(Detroit of Asia)’**라고 불립니다.
미국 디트로이트가 미국 자동차 산업을 상징했던 것처럼 태국이 동남아시아의 대표적인 자동차 생산기지로 성장했기 때문입니다.
특히 태국에서 생산된 자동차는 태국 내수시장에만 판매되는 것이 아닙니다.
ASEAN 국가를 비롯해 호주와 중동 등 세계 여러 시장으로 수출됩니다.
도요타 역시 태국을 글로벌 생산기지 가운데 하나로 활용해 왔습니다.
2004년 시작된 도요타의 IMV 프로젝트에서는 태국과 인도네시아가 글로벌 생산거점 역할을 담당했고, 태국에서는 특히 Hilux 생산이 중요해졌습니다.
그래서 태국 도로에서 볼 수 있는 일본차 중 상당수는 사실 일본에서 수입한 자동차가 아니라 태국에서 생산된 일본 브랜드 자동차입니다.
태국 일본차 시장을 이해하려면 ‘픽업트럭’을 봐야 한다
태국 자동차 시장의 가장 독특한 특징 가운데 하나가 바로 픽업트럭입니다.
한국에서는 픽업트럭이 상대적으로 흔하지 않지만 태국에서는 상황이 완전히 다릅니다.
방콕에서 조금만 지방으로 나가도 픽업트럭을 매우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농업과 자영업, 물류 등 다양한 용도로 사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짐을 실을 수도 있고 사람을 태울 수도 있으며 도로 사정이 좋지 않은 지역에서도 활용도가 높습니다.
그리고 이 시장을 오랫동안 장악한 두 모델이 있습니다.
Toyota Hilux와 Isuzu D-Max입니다.
따라서 태국에서 이스즈의 존재감은 한국에서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큽니다.
태국 자동차 시장을 단순히 승용차 중심으로 보면 일본차의 강점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습니다.
태국의 생활환경과 픽업트럭 수요를 일본 기업들이 정확하게 공략한 것도 일본차가 강해진 중요한 이유입니다.
태국에서 픽업트럭이 유독 많은 이유에는 생활환경뿐 아니라 자동차 세금 구조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태국의 자동차세가 차종에 따라 어떻게 달라지는지는 「태국의 자동차세금 구조 : 한국보다 합리적으로 보이는 이유」에서 자세히 정리했습니다.
한번 만들어진 자동차 생태계는 쉽게 바뀌지 않는다
일본차가 태국에서 강한 또 하나의 이유는 네트워크 효과입니다.
자동차를 구입할 때 소비자는 단순히 차량 가격만 보는 것이 아닙니다.
수리가 쉬운지, 부품을 쉽게 구할 수 있는지, 가까운 곳에 서비스센터가 있는지, 중고차로 팔 때 가격을 얼마나 받을 수 있는지도 중요합니다.
일본 자동차가 수십 년 동안 태국 시장을 장악하면서 이런 인프라도 함께 성장했습니다.
도요타나 이스즈 자동차가 많아지면 정비소에서도 해당 차량을 수리하기 쉬워집니다.
부품 수요가 많기 때문에 부품 유통망도 커집니다.
중고차 거래량도 많아집니다.
그러면 소비자는 다시 일본차를 선택하기 쉬워집니다.
결국, 많이 팔림 → 부품이 많음 → 수리가 쉬움 → 중고차 거래가 쉬움 → 다시 많이 팔림이라는 구조가 만들어진 것입니다.
이것이 후발 자동차 브랜드가 기존 시장을 뚫기 어려운 이유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한국 자동차는 왜 태국에서 약했을까?
한국인 입장에서는 자연스럽게 이런 궁금증도 생깁니다.
현대자동차와 기아는 세계적인 자동차 회사인데 왜 태국에서는 일본 브랜드만큼 많이 보이지 않을까요?
가장 큰 차이는 시장에 뿌리를 내린 시기와 현지 생산 기반입니다.
일본 자동차 업체들은 1960년대부터 태국에 공장과 판매망, 부품 공급망을 구축했습니다.
수십 년 동안 태국 소비자들에게 브랜드가 노출됐고 현지 자동차 산업도 일본 업체 중심으로 성장했습니다.
후발주자가 단순히 좋은 자동차를 판매하는 것만으로 이 구조를 뒤집기는 쉽지 않습니다.
특히 태국에서 중요한 픽업트럭 시장에서 Toyota와 Isuzu가 강력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는 것도 큰 차이입니다.
따라서 태국에서 한국 자동차가 일본 자동차보다 적은 것은 단순히 ‘한국차를 싫어해서’라고 설명할 문제가 아닙니다.
산업의 역사와 생산 기반에서 출발점 자체가 달랐던 것입니다.
그런데 일본차 천국 태국에 변화가 시작됐다
수십 년 동안 유지된 일본 자동차 중심 구조에 최근 강력한 경쟁자가 등장했습니다.
바로 중국 자동차 기업입니다.
특히 전기자동차 시장에서 중국 기업들의 성장세가 두드러집니다.
BYD를 비롯한 중국 자동차 기업들은 단순히 중국에서 만든 전기차를 태국으로 수출하는 데 그치지 않고 태국에 직접 생산시설을 구축하는 전략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 방식은 과거 일본 자동차 회사들이 태국 시장에 진출했던 모습과 상당히 닮아 있습니다.
2025년에도 일본차가 강하지만 BYD가 빠르게 성장했다
시장 전체를 보면 아직 일본 자동차의 영향력은 매우 강합니다.
2025년 태국 자동차 시장에서 도요타는 약 37%의 시장점유율을 차지했습니다.
혼다는 약 11.9%, 이스즈도 약 11.8%를 차지했습니다.
상위권을 일본 업체들이 여전히 차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눈여겨볼 브랜드가 있습니다.
바로 중국의 BYD입니다.
BYD는 2025년 태국에서 약 3만9,900대를 판매하며 약 6.4%의 시장점유율을 기록했고 전년보다 판매량이 크게 증가했습니다.
아직 도요타와는 상당한 차이가 있지만 과거와 달리 중국 업체가 태국 자동차 시장의 주요 브랜드로 올라오기 시작했다는 점이 중요합니다.
중국 전기차는 왜 태국에서 빠르게 성장할까?
중국 자동차 기업이 태국에서 빠르게 성장하는 데에는 전기차 전환이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내연기관 자동차에서는 일본 기업들이 수십 년 동안 구축한 엔진 기술과 공급망, 브랜드 신뢰도가 강력한 진입장벽이었습니다.
하지만 전기차 시대가 시작되면서 경쟁 조건이 달라졌습니다.
중국 업체들은 배터리와 전기차 생산에서 강점을 갖고 있으며 가격 경쟁력도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있습니다.
태국 정부 역시 전기차 산업을 새로운 성장산업으로 육성하면서 투자 유치에 나섰습니다.
그 결과 중국 기업들이 태국을 동남아 전기차 생산기지로 활용하기 시작했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것이 과거 일본 자동차 기업의 성장 방식과 비슷하다는 점입니다.
수입 → 현지 판매 → 현지 생산 → 부품 공급망 구축 → 수출기지화라는 흐름입니다.
일본차는 태국에서 밀려나게 될까?
당장 그렇게 보기는 어렵습니다.
도요타를 비롯한 일본 업체들은 이미 태국에 수십 년 동안 막대한 생산시설과 공급망을 구축했습니다.
판매망과 서비스센터, 정비 인프라, 중고차 시장까지 고려하면 일본차의 경쟁력은 단순한 판매량 이상의 의미를 갖습니다.
2025년에도 Toyota가 압도적인 시장 1위를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를 보여줍니다.
다만 전기차 시장만 놓고 보면 상황이 다릅니다.
중국 자동차 기업이 빠르게 성장하면서 일본 업체들도 기존 내연기관 중심 전략만 유지하기 어려워졌습니다.
결국 앞으로 태국 자동차 시장의 핵심 경쟁은 일본의 기존 자동차 산업 생태계 vs 중국의 전기차 산업 생태계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태국은 일본차 천국에서 중국 전기차 격전지로 변하고 있다
태국 도로에 일본차가 많은 이유를 단순히 태국 사람들이 일본을 좋아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하면 자동차 산업의 중요한 역사를 놓치게 됩니다.
도요타를 비롯한 일본 자동차 기업들은 1960년대부터 태국에 진출했습니다.
태국 정부는 외국 자동차 기업의 투자를 적극적으로 유치했고 일본 기업들은 자동차 조립에서 시작해 부품과 엔진 생산, 판매망과 서비스망까지 확대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태국은 동남아시아를 대표하는 자동차 생산국으로 성장했고 일본차 중심의 거대한 자동차 생태계가 만들어졌습니다.
그래서 오늘날 태국에서 판매되는 일본 브랜드 자동차 상당수는 단순한 **’일본 수입차’가 아니라 ‘태국에서 만든 일본 브랜드 자동차’**입니다.
이것이 태국이 일본차 천국이 된 가장 중요한 이유입니다.
하지만 60년 동안 유지됐던 이 구조에도 변화가 시작됐습니다.
과거 일본 기업들이 태국에 공장을 세우고 현지 생산을 확대했던 것처럼 이제 중국 전기차 기업들이 같은 전략으로 태국 시장에 들어오고 있습니다.
따라서 앞으로 태국 자동차 시장을 볼 때는 단순히 “일본차가 얼마나 많이 팔리는가?”보다 “일본이 구축한 자동차 산업 생태계를 중국 전기차 기업이 얼마나 빠르게 따라잡을 수 있는가?”를 보는 것이 더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가 될 것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태국에는 왜 일본차가 많나요?
Toyota, Isuzu 등 일본 자동차 기업들이 1960년대부터 태국에 진출해 현지 생산시설과 부품 공급망, 판매·정비 네트워크를 구축했기 때문입니다. 태국 정부의 제조업 육성정책도 일본 자동차 기업의 현지 생산 확대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태국에서 가장 강한 자동차 브랜드는 무엇인가요?
Toyota가 오랫동안 태국 자동차 시장의 선두권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특히 Hilux 등 픽업트럭의 영향력이 크며 Isuzu와 Honda 역시 태국에서 강한 일본 브랜드입니다.
태국에서 픽업트럭이 많은 이유는 무엇인가요?
농업, 물류, 자영업 등 다양한 용도로 활용하기 좋고 승용과 화물 운송을 동시에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태국의 자동차 정책과 현지 생산환경 역시 픽업트럭 시장 성장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태국에서는 한국차가 왜 적나요?
일본 자동차 기업들이 한국 업체보다 수십 년 먼저 태국에 대규모 현지 생산 및 공급망을 구축했습니다. 따라서 단순한 브랜드 선호도보다 생산시설, 판매망, 정비망, 부품 공급망 등의 산업 구조 차이가 중요합니다.
중국 전기차가 일본차를 대체할 수 있을까요?
현재 태국 전체 자동차 시장에서는 일본 브랜드가 여전히 강하지만 전기차 시장에서는 중국 업체의 영향력이 빠르게 커지고 있습니다. 향후 태국 자동차 시장에서 가장 중요한 변화 중 하나가 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